버클리 음대, 그 오해와 진실

버클리 음대, 그 오해와 진실
세계최고의 1대1 실기교육 받을 수 있지만 졸업장 간판삼아 성공하긴 힘들어
사진/ 싸이(위)와 양파(아래)등 인기 가수들이 버클리 재학을 강조하면서 버클리 음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김봉규 기자)
꿈의 대학은 하버드나 매사추세츠 공대(MIT)만이 아니다. 클래식 음악을 하는 청소년들은 모두 줄리아드를 목표로 하고 영화학도라면 마틴 스코시즈와 스파이크 리 같은 유명한 감독을 배출한 뉴욕대(NYU)에서 실기전문석사학위(MFA) 과정을 꿈꾸게 마련이다. 재즈나 록, 팝 같은 대중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버클리 음대 역시 꿈의 대학이다. 버클리 음대는 마이클 잭슨을 키운 명제작자 퀸시 존스, 재즈 연주자 브랜퍼드 마살리스, 팻 매시니 등 세계적인 대중음악가들을 키운 세계최고의 실용음악학교다.
싸이의 ‘학력위조’해프닝
90년대 초 버클리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수요예술무대 진행자 김광민씨와 정원영, 한충완씨, 그리고 기타리스트 한상원씨가 비슷한 시기에 버클리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국내 음악계에 뛰어들면서 버클리 음대라는 이름이 일반인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한 90년대 중반부터 각 대학에서 실용음악과를 개설하며 버클리에 대한 관심도 한층 높아졌다.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학과장인 한충완 교수가 다니던 80년대 중반만 해도 학교 전체에 5∼6명에 불과하던 한국 유학생이 지금은 200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싸이나 양파 같은 대중가수들까지 버클리 음대의 타이틀을 달고 나와서 ‘버클리 음대=재즈음악학교’라고 여겨온 많은 이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있다.
버클리 음대를 알기 위해서는 또 하나 풀어야 할 오해가 있다. 얼마 전 싸이의 학력위조 논쟁을 불러일으킨 버클리대학, 즉 U.C 버클리와 버클리 음대는 다른 학교다. 일반인들에게 명문대학으로 더 잘 알려진 U.C 버클리는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버클리 분교(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은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버클리 등 여러 도시에 흩어져 있다)로 정확한 명칭은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다. 반면 동부의 보스턴에 위한 버클리 음대는 음악단과대학으로 정확한 이름은 ‘Berklee College of Music’이다. 버클리 음대 역시 대중음악에서는 최고의 학교이니 명문 버클리 출신이라는 싸이의 자기소개가 틀린 건 아니다.
버클리 대학은 1945년 피아니스트이자 엔지니어였던 로렌스 버크에 의해 창립됐다. 버클리라는 학교이름은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정식대학으로 인가가 난 73년 지금의 명칭을 얻게 됐다. 버클리가 세계 최대 규모, 최고의 교육수준으로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버클리 음대의 학생 수는 3천명인 데 비해, 교수의 수는 400명에 육박한다. 교수 한명당 학생 수가 채 열명이 되지 않는다. 버클리에 유명한 앙상블 수업이 가능한 것은 이런 이유다. 앙상블 수업은 비슷한 수준의 학생 대여섯명이 파트별로 한팀을 이뤄 한 학기 내내 교수와 1대1식으로 수업을 받는 것으로 버클리를 실기교육에서 세계최고로 만든 수업과목이다.
전공은 작곡, 연주(Performance), 뮤직 프로덕션&엔지니어링(MP&E), 필름 스코어링, 뮤직비즈니스 등 실제 연주에서 기술, 산업까지 8개로 나뉜다. 독특한 점은 실기뿐 아니라 제작기술이나 뮤직비즈니스를 하더라도 모든 학생이 반드시 하나 이상의 악기를 어느 수준 이상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산업이든 기술이든 음악 자체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버클리 음대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전공 가운데 독특한 것으로 프로페셔널 뮤직이라는 게 있다. 다른 전공과 달리 학생의 목표와 학업수준에 따라 스스로 수업방향을 정해나가는 전공으로 연주와 작곡, 연주와 비즈니스 등을 학생이 원하는 대로 상담자와 함께 커리큘럼을 짜나가는 것이다. 학생들의 견해를 존중하는 버클리 음대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전공이다. 또한 전공이 정해지더라도 선택할 수 있는 수업이 100가지가 넘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음악적 취향과 흥미를 개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40%만이 끝까지 간다
사진/ 버클리 음대의 앙상블 수업. 5~6명의 팀 하나가 한개의 클래스를 이루기 때문에 1:1 수업이 가능하다.
많은 미국의 대학이 그렇듯 버클리 음대도 입학은 까다롭지 않은 편이다. 특히 유학생의 경우 특정분야의 모자라는 실력을 학기중에 보강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조건부 입학도 가능하다. 그러나 학과목의 통과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97년 입학해서 지난해까지 기타를 전공하고 졸업한 김정배(28)씨는 “연주 전공을 끝까지 따라가려면 주말, 평일 할 것 없이 밤낮으로 연습해야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연습을 하다가 기타를 끌어안고 잔 적도 여러 번이라고 회고한다. 실기 전공뿐 아니라 모든 학생의 필수 이론과목인 화성학과 청음도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여기서 중도포기하는 학생도 흔하다고 한다. 제대로 끝까지 공부를 하는 사람은 전체 입학생의 40%도 안 된다. 그러나 학교의 특성상 졸업 그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 93년부터 99년 봄학기까지 MP&E와 필름스코어링을 전공한 노형우(31)씨는 “한 학기만 공부해도 3∼4년 동안 연습할 내용이 충분하기 때문에 외국학생들은 1∼2년 정도,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끝까지 공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위를 중요시하는 국내 풍토 때문이다. 최근 들어 한국 유학생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한국 학생들도 연습벌레파에 비해 간판을 따기 위해 유학오는 놀자파가 뚜렷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노씨는 “대부분의 과목이 몇 학기로 길게 이어지면서 수준이 높아지는데 계속 따라가지 못하고 연주에서 편집으로, 또 비즈니스로 전공만 바꿔가며 의미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학생들도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80년대 중반만 해도 2천달러 정도이던 한 학기 등록금이 최근에는 9천달러 정도로 올라 버클리 음대는 미국인이라도 웬만해서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학비가 비싸다. 그런데 한국인 200명 가운데 적어도 반은 1년에 2천만원 이상을 뿌려가며 간판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버클리 출신의 음악인들은 간판을 따온다고 해서 국내에서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라고 경고한다. 김정배씨는 “벌써 국내에 들어온 버클리 졸업생들이 꽤 많기 때문에 음악판에 발붙이기 위해서 버클리 졸업장이 해결해줄 수 있는 건 별로 없다”고 말한다. 졸업장은 따왔더라도 실력에서 떨어지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충완 교수 역시 버클리 입학을 준비하는 미래의 음악인들에게 신중할 것을 권유한다. “버클리에서 졸업장을 따온다고 하더라도 국내에서 실력을 닦은 뮤지션들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중요한 건 어디서보다 어떻게 음악을 공부해야 하는가 하는 마음가짐이다” 필름 스코어링이라는 생소한 전공을 하고 돌아온 노형우씨는 “한국에 돌아온 뒤의 현실적 여건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영화음악을 만드는 필름 스코어링 작업의 경우, 외국에서라면 지휘봉 하나만 들고 일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음악샘플링에서 스튜디오 녹음 등 모든 작업을 작가 혼자 해야 하기 때문에 외국에서 배운 내용과 한국적 음악현실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음악 한번 공부해보자고 버클리 음대를 준비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짐가방을 푸는 게 좋을 것이라고.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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